청춘스타에서 ‘진짜 배우’로 거듭난 싱글대디 

“연말 시상식에 참석하는 건 20여 년 만에 처음이에요. 저는 사실 무명 시절없이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행운아였어요. 그러다 중간에 긴 공백기를 가졌고, 힘든 시절을 보내느라 좌절감이 더 컸죠. 그래도 가족과 딸이 있어서 지금까지 잘 버텨올 수 있었어요.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해 KBS 연예대상에서 리얼버라이어티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이하 ‘살림남 2’)로 우수상을 탄 배우 김승현(38)의 수상 소감은 그가 보내온 지난 했던 시절을 잘 알고 있는 가족과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는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하며 단번에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드라마 주연과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 등을 섭렵하며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매일 세 상자 이상의 팬레터를 받고 명동 같은 번화가에 나가면 일대가 마비될 정도였다. 하지만 십 대 소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청춘스타로 명성을 날리던 그가 곤두박질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초반이던 2003년, 그에게 고등학교 시절 만난 여자친구 사이에서 낳은 세 살 된 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에게 환호하던 팬과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제는 미혼모나 미혼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당시만 해도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들의 추락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부모님은 아이를 동생으로 호적에 올리자고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차마 인기와 딸을 맞바꿀 수는 없었다.

숨기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딸이 있는 게 죄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활동을 중

단한 그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을 얻었잖아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죠.” 그 시절을 담담하게 회상하는 그이지만 외로이 견뎌내야만 했던 시간들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는가. 한 아이의 아빠인 동시에 배우가 되고 싶은 꿈 많은 청년에겐 어딜 가든 ‘미혼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갑자기 돌아선 따가운 시선에 마음이 무너졌지만 그는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당당하게 배우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열망으로 연극 무대의 문을 두드리며 단역, 조역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연기력을 키워나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죠. 데뷔하자마자 갑자기 주목받으면서 멋모르고 연기를 했거든요. 이번 기회에 기본기를 제대로 다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로를 찾은 거예요. 그동안 연기의 기본이 되는 연극 연기로 실력을 쌓으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어요.”

<살림남 2>로 다시 큰 관심을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가 긴 공백기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하지만 TV에서 자주 볼 수 없었을 뿐 그에게 연기 공백은 없었다. 연극과 단편 영화 등 1년에 한두 작품 이상에 출연하며 누구보다 성실히 활동해온 노력이 얼마 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한 그는 연극 <가족의 탄생> <춘천 거기> 등의 드라마 장르는 물론 창경궁 야외에서 열린 전통 사극 <인조, 길 끝에서>에서 왕의 역할까지 맡는 성과를 이뤘다. 최근 오픈런으로 공연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로맨틱코미디 <스캔들>은 지금도 관객 점유율 90퍼센트 이상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는 대신 탄탄히 내실을 다진 결과 다양한 역할을 너끈히 감당하는 배우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그를 붙들어준 것은 늘 곁에서 힘이 되는 가족이었다. 아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연예인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채근하지 않았다.

스케줄이 불규칙해 혼자 딸을 키울 사정이 안 되는 아들을 대신해 손녀를 맡아 돌보며 그저 믿고 기다려줄 뿐이었다. 딸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작은 옥탑방을 얻어 나와 사는 그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부모님에겐 양육의 부담을 지어준 것이, 딸 수빈이에겐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했다.

아빠의 이런 마음을 알았던 걸까.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떨어져 지낸 딸은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의젓하게 자라주었다.

살림남 2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딸 덕분이다. 처음 제의를 받고 다시 대중 앞에 설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지만 딸과 같이 나오는 것이 출연 조건이었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인 딸에게까지 방송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이 바로 딸의 한마디였다.

“이번이 아빠에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같이 출연하자!”

재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딸의 격려 속에서 2017년 5월 살림남 2에 합류하며 그는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미혼부로 살아가는 애잔한 모습, 그를 둘러싼 가족이 전하는 소소한 감동, 때론 시트콤보다 더한 재미를 선사하는 가족의 일상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림남 2가 KBS 간판 예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김승현 씨 가족 때문에 살림남을 봐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요”와 같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수요일 밤 예능을 책임지고 있다. 예능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그는 요즘 여러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우선 작품 활동에 박차를 가하며 본업인 배우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질투의 역사>와 <한주>라는 두 편의 영화 촬영을 마쳤고, 각각 올해 상반기와 후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감사하며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한 미혼모 시설에 봉사를 다니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한편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돕는 청소년경제교육재단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미혼부 간담회에 미혼부 대표로 참석해 그들의 현실과 어려움을 대변하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의미 있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그의 마음을 아는 팬들은 그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전에는 겉모습이나 외모에 열광했다면 이제는 제 삶과 꿈을 마음 깊이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아졌어요. 그분들과 SNS로 소통하다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좋은 아빠, 실력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겠죠?”

너무 어린 나이에 누린 최정상과 한순간의 추락, 어두웠던 지난날은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유명 연예인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배우, 오래오래 연기하는 배우로 남기를 꿈꾸는 김승현. 그는 이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그러했듯 늘 탄탄대로만이 펼쳐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ㅣ김승현은 스무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딸 수빈이와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낸다.

그래도 두렵지 않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곁에는 어느새 훌쩍 커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딸과 묵묵히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부모님, 그의 삶과 연기에 아낌 없는 지지를 보내는 팬들이 있다. 조금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나아가는 거북이처럼 뚜벅뚜벅 배우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더는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글 조연혜 기자 | 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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