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독과의 조우 " ㅡ 만남 / 조무제, 동아대 석좌교수, 전 대법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인간관계를 짓는다.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겉보기론 신속하고 활발해졌다. 교통,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직접 만남, 영상, 음성이나 문자를 통한 만남이 쉬워진 결과이다. 예전엔 모처럼의 만남에 다소간 긴장이나 진중함을 지녔던 추억이 남아있다. 그런 진중함이 야말로 떨어져 지내면서도 오래 가는 유대감을 남긴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만남이 범람하다시피 한 요즘은 어떤가. 잠시라도 바깥의 존재와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면서도 만남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늘어간다. 그러면서도 그런 관계라도 끊기면 고독과 맞닥뜨리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새해를 열면서 뒤돌아보게 되는 이 시점에, 특이한 만남인 고독과의 조우를 말하려는 연유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양하듯이 고독이라 해도 한 가지 색깔뿐인 건 아니다. 흔히 가까이에 함께 시간을 보낼 대상이 없을 적에 고독하다고 한다. 여기엔 피상적이며 외로운 느낌이 많을 것이다. 대개의 외로움은 끼리끼리 함께하여 나눌 수 있다. 게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적 외로움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 이도 많다.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1900~1944)는 야간비행에서의 고독을 음미하는 법을 터득했다. 라인홀드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산소 없이 단독 등정하면서 험준한 자연을 경외심어린 상상으로 되새겨봄으로써 하얀 고독을 체험할 수 있었다.
보다 현저한 것으로, 지체의 장애라든가 질병에서 오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고독함이 있다. 그 고통인들 작을 리가 없다. 계속되거나 간헐적인 장애의 불편이나 통증 앞에서는 외로워지기 십상이다. 가족 친지들이나 의료진 그 누구조차 장애나 고통 섞인 그 고독을 대신해 줄 수는 없음을 통감할 것이다. 그런데, 보거나 들을 수도 없고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가 그 엄청난 고통조차 딛고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잠재된 상상력으로 고독감을 떨쳐버리고 창조적 활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본보기로서 잊지 못하고 있다.
빠뜨려선 안 될 또 다른 경우가 있다. 어렵고도 중요한 업무에 당하여 처리결과의 엄청난 무게를 지는 이의 처지 역시 특별하다. 선택의 과제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기 쉬운 상황이다. 거기는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최종적으론 혼자만의 결단으로 해결해야 한다. 특별한 직분의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고독감이다. 자신에 의한 선택의 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수많은 사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당자는 시종 중요하고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였음을 절감한다. 더구나 그 과정은 공개될 성질이 못된다. 철저한 보안 속에 혼자 결론을 찾아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선택지는 몇 가지로 나뉘어져 어느 것이나 일장일단이 있다. 최선의 것은 어느 것인가. 아니 어느 것으로 삼아야 하는가. 경험에 따르면 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법관도 비슷한 고독감에 부딪치곤 한다. 검사와 피고인, 원고와 피고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인가. 한쪽 주장의 증거가 있는가 하면 반대 편 증거도 있다. 사리로는, 어느 것도 진실일 가능성은 있다. 수리과학적으로 정확성을 검증하여 정답을 확인할 길은 없다. 검토 과정에선 법적 안정성을 지켜야 하지만 구체적 타당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밤을 지새우면서라도 거듭 점검하며 천착은 계속된다. 평소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사항조차 하나하나 거듭 따져본다. 당면한 이 문제 외에는 사생활이나 다른 것들은 아예 뇌리에 남겨 놓지 않았다. 사안을 송두리째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깊어진 사색이 보다 나은 결론이라고 보이는 점에서야 멈춘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단계에 이르면 이미 고독하다는 느낌은 스며들지 못한다.

사랑이 신의 영역이듯 고독은 사람의 영역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Anthony Storr, 1920~2001)는 그의 저서 <고독-자신에의 복귀>에서 고독의 효용성을 일깨웠다. 어떠한 형태든 고독은 인생에 필요한 과정이며, 자신의 내면과 직접 마주함으로써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라 한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 의식을 집중시킬 때, 내면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때 내면의 능력은 무엇을 생각의 중심에 둬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고독감이 강해지면 마음이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마음의 고통도 음미해보면 상대비교 끝의 욕망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아무런 고통 없는 삶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망이다. 내면의 자신은 알려줄 터이다. 최선의 노력으로도 피할 도리 없이 주어진 고통은 삶의 원래 모습이다. 욕망을 내려놓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라. 그 고통을 녹여내려거든 숨어있는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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