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에 대한 단상 > 이 한 장의 사진 / 이한구, 사진작가

 
  히말라야의 건조한 가을바람이 마을 앞 들판을 훑고 지나면 겨울이 찾아온다.
이때 저 멀리 언덕 위로부터 먼지가 일고, 곧이어 ‘떨그렁 떨그렁’ 귀에 익은 종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야크 떼다. 야크 등짝에 소금을 싣고 장사를 떠났던 마을의 카라반 행렬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면서 수많은 야크 무리가 고개를 넘어 이제 막 가파른 경사로 우르르 몰려 내려오는 모습이 장관이다. 오랜 기간 험난하고 힘든 카라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가족들로 인해 마을은 한껏 들뜨고 술렁인다. 종소리는 그 풍경에 곁들여진 축제음악이다.
일명 ‘소금 카라반’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진 <카라반>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적이 있는지. 영화 속에는 네팔 서부 오지인 돌포 지역 사람들이 야크에 소금을 싣고 티베트와 네팔의 히말라야를 넘나들면서 생활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때 묻지 않은 히말라야 마을의 원형을 배경으로 험난한 소금 카라반의 여정과 독특하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이 꽤 흥미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품 넘치는 히말라야의 야크들이었다.
 영화 속의 야크 카라반을 본 이후로 ‘순정의 땅’으로 불리는 돌포를 돌아다니면서 히말라야 야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 여행을 계획했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워낙 사람이 들기 어려운 오지인데다 일상의 시간을 잠시 쪼개서 관광하듯 다녀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돌포 히말라야 지역은 가지 못했지만, 여러 차례 고산등반을 다니는 동안 하나의 산맥으로 이어진 쿰부 히말라야 지역을 깊숙이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쿰부란 에베레스트까지 다녀올 수 있는 여정으로,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지역을 말한다. 사가르마타라는 이름은 에베레스트로 명명되기 이전부터 네팔사람들에게 불리어지던 정식 명칭인데 그 뜻은 고고하고 품위 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뜻의 히말라야에 걸맞게 ‘세상 어머니의 산’이란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몇날 며칠을 히말라야 깊은 산속으로 걸어들어 가던 중 텡보체라는 마을에 닿게 되었다. 유난히 안개가 많이 몰려다니는 이 마을은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에 매우 큰 규모의 곰파(사원)가 서있다. 안개 자욱한 마을을 기웃기웃 돌아다니다가 사원에 들렀다. 고요한 마당에 앉아 호흡을 고르자니, 마음까지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때 사원 뒤편으로 안개 속에서 육중한 풍채의 야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지에 검은 묵선으로 힘 있게 그린 듯 형체가 온전했다가, 우우 몰려다니는 안개로 인해 설핏 사라지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꼭 만나고 싶었던 기품 있는 그 야크였다. 녀석이 전혀 움직이지 않기에, 이제는 내가 다가갈 차례였다. 야크의 뒤쪽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이 안개의 입자처럼 조심스럽다. 드디어 녀석의 발치 옆에 나는 다가서있다.
긴 시간이 흐르도록 야크와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서 있었다. 가끔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할 때면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목덜미로부터 늘어진 털들은 부드러운 갑옷처럼 윤기 있게 네 다리를 타고 흐르다가 발목윗부분에서 마감을 하며 날렵한 발목을 가리지 않았다. 몸체에 비해 짧으나 굵고 튼튼 날렵한 다리. 땅까지 늘어뜨린 꼬리털은 뒷다리를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풍성하다. 뿔 한 쌍은 히말라야의 바람을 가를 수 있다는 듯 강하고 예리하게 허공을 떠받치고 있었다. 안개를 휘 두르고 명상에 잠긴 듯한 모습이 그윽했다.
 숨을 죽이고 독대하기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야크가 걸음을 띤다. 의연한 군자처럼 느릿느릿한 평소 걸음걸이로 안개 속 점점이 사라졌다. 끝까지, 소실점이 되어 사라지는 녀석의 잔상이 아롱진다. 상(像)에서 염(念)으로 번져 나가는 순간이다.
 해발 4,000미터에서 6,000미터 사이에서만 살 수 있는 야크.
 녀석을 만나려면, 인간이 그 고도 안에 들어야만 한다. 야크는 높은 산, 희박한 산소의 히말라야, 그곳의 삶과 풍경의 일부다. 그날의 야크가 담긴 사진 한 점이, 히말라야처럼 우뚝 내 곁에 있다.


글/ 사진. 이한구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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