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 오성윤, 애니메이션 감독ㅡ " 시간의 펜촉, '나'를 담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Frozen>(2013)이 지난한 겨울을 녹이며 흥행 왕국(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을 세웠다. 그 열풍에 실린 뮤지컬 넘버 ‘렛잇고(Let it go)’ 역시 다양한 버전으로 파생되어 흥행 온도를 높이고 있다. 이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서사와 보편적인 주제가 대중심리와 맞닿은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공을 관조하면서 잠시 카메라 앵글을 한국 애니메이션의 척박한 지형으로 돌려보면, 힘겨운 뿌리내리기 끝에 풍성한 가지를 늘어뜨린 아름드리나무와 같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신기록(220만)을 세운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의 오성윤 감독(52)이 그 주인공이다. 6년의 제작기간을 품은 뒤 알에서 깨어난 이 작품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오늘과 내일을 여는 창이 됐지만, 이면에는 심리적 유산과 같은 그의 끈기와 열정으로 빚어진 자기증명의 시간이 머물고 있다. 그 역동적인 시간의 원류를 찾기 위해 서울애니메이션센터(중구 예장동)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늦은 저녁, 스텝들과 차기작 <언더독 Underdog> 작업에 한창이던 작업실에는 각자의 시간을 붙들며 뜨거워진 창작열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간 가득 시간의 흔적을 담은 스케치를 보니 펜촉에 흐르고 있는 그의 ‘1만 시간의 법칙’이 궁금해졌다.
 “첫 작품이 나오기까지 꼬박 20년 걸렸어요. 도중에 유혹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팠죠.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동고동락한 스텝들과 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경이로워요. 사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저의 존재와 정체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마치 엄동설한에 아궁이 뗀 빈방에 놓인 얼음 위에 서서 입에 데지도 못할 정도로 뜨거운 물을 마시려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버틴 삶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은 점은 ‘잎싹’(암탉)과 닮았어요. 어쩌면 실패자가 되는 게 두려워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나는 과연 누구일까,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작품에 녹아서 주제와의 접점을 이루고 있죠.”
 자아의 실종과 실존을 다루는 그의 작품들은 ‘나’라는 단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그것을 둘러싼 점들을 하나씩 엮어가다 보면, 대학시절 순수회화를 전공(서울대 회화과)하면서 ‘사회’속의 ‘나’를 고민하고 ‘작은 것’을 연민해왔던 과거와 마주치게 된다. 당시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이야기의 힘을, 대중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사회의식을 형성했고, 연희자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직접 주고받는 암묵적인 대화와 에너지의 흐름을 동경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화가의 꿈은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재편성되고 있었다.
 “80년대 초 학번이라 사회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순수예술만 고집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연극반 활동과 영화에 빠지면서 감독의 꿈으로 우회했죠. 그때는 별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었어요(웃음). 특히 전공이 아닌 분야에 존재하는 진입장벽으로 접근의 어려움도 실감했죠.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프랑스 애니메이션 <발자국 Lempreinte>을 보게 됐는데,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강렬한 메시지와 회화적인 요소가 대단했죠. 그림을 영화화 한 애니메이션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은 거예요.”
 그는 대중예술가의 사명감을 ‘공유’와 ‘나눔’으로 설명했다. 과학자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인류번영을 위해 신약개발을 하듯, 대중문화생산자도 대중들이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 감춰진 진실을 찾아서 공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산업구조, 제조업의 관점에서만 문화산업(애니메이션)을 재단하는 사고의 위험성으로 연결된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지형을 확대하려면 이원론적 산업구조에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것보다는 문화적, 영화적,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장르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시각과 진실성이 필요한 거죠. 문화적 다양성 측면으로 접근해야 100년을 내다볼 수 있으니까요. 특정한 소재(이야기)로 보편적인 주제를 담으려면 톤앤매너(Tone&Manner)의 결을 잘 정리하고, 정서적 흐름과 플롯이 유기적으로 조합되도록 연출해야 해요. 사실 전작에서 단순히 모성애를 말하려고 한 게 아니라 보다 본질에 가까운, 즉 양계장 닭이 본질이냐 난용종 암탉이 본질이냐 하는 자기정체성의 문제가 핵심이었죠.”
 그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드문 매력적인 이야기를 메인 플롯으로 이끌지 못해서 철학적 함의가 희석된 전작의 아쉬움을 차기작에서는 꼭 해결할 거라고 했다. 이처럼 작품을 매개로 예술의 본질과 스스로의 고민에 화두를 던지며 경계에 선 그는 앞으로 ‘얼마나’ 진하고 날카로운 펜촉으로 ‘어떻게’ 오늘을 발판삼은 내일에 제언해 나갈까.
“우선 차기작에 힘써야죠. 버려진 개, 사회적 약자라는 뜻을 지닌 <언더독>(2016년 하반기 개봉 예정)에서도 인간과 사회, 생태계에 속한 존재들의 정체성과 인간의 본성을 조명할 거예요. 세 번째 작품까지 발표한 뒤 상황이 허락되면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처럼 안정적인 공간을 만들어서 자유로운 창작과 후배양성도 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대중의 공감과 동의를 얻을만한 좋은 작품을 발표하는 게 가장 큰 의무죠. 감독은 작품으로 말하는 거니까요.”
 인터뷰의 문을 닫으며 문득 낮은 조도의 작업실을 바라보니 <마당을 나온 암탉>의 엔딩신이 떠올랐다. ‘잎싹’이 눈 오는 언덕에서 파수꾼으로 떠나는 아들 ‘초록이’와 이별하며 “나는 왜 한 번도 날아야겠다는 생각을 안했을까?”하면서 퇴화된 날개로 처음이자 마지막 비상을 시도하는 그 장면. 결국 중력을 넘어서지 못한 자신의 두 다리를 애처로이 바라보며 생태계의 냉혹한 질서(족제비의 먹잇감)에 침잠하지만, 이 비극적 결말은 삶의 긍정과 희망을 역설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하는 소설 <날개>의 한 구절처럼, 마당에서 생태계로 나온 암탉을 닮은 오 감독의 날갯짓처럼.



글/사진. 김신영 기자

copyrightⓒ월간에세이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