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반도체·조선 글로벌 NO.1 산실 - 쏠림 현상 줄이고 신시장 개척 나서야

전자·반도체·조선 글로벌 NO.1 산실
쏠림 현상 줄이고 신시장 개척 나서야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또한 세계 9번째로 무역규모 1조달러를 돌파한 국가다. 경제적 지표로 볼 때 한국은 여러모로 ‘세계 톱10’ 언저리에 도달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땀과 눈물의 여정이었다. 이른바 압축성장을 추구했기에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랑스런 역사로 자부해도 괜찮을 것이다. ‘글로벌 NO.1’ 반열에 오른 한국 기업과 제품은 그 빛나는 훈장이다. 
 
 
1992년 8월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경제계에서 날아든 한 가지 소식으로 신문과 TV가 떠들썩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64메가D램 메모리반도체를 개발했다는 낭보였다. 당시 64메가D램은 신문 520장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해서 일반인들 사이에도 큰 화젯거리가 됐다.
삼성전자의 64메가D램 개발 성공은 한국 산업사에서 큰 의미를 띠었다. 한국 기업이 첨단 반도체산업에서 선도적 위치에 올랐다는 신호탄이자, 우리나라도 세계 1등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산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2류, 3류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삼성, 현대, LG(옛 금성), 대우 등 당시 ‘국가대표 기업’들이 해외 시장 개척에 열심히 나섰지만 품질이나 디자인, 브랜드 면에서 미국, 일본, 유럽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시절 한국산 섬유, 의류 등이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인기를 끌었지만 자체 브랜드도 붙일 수 없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에 그쳤을 뿐이다. 그런데 불과 10여년 만에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괄목상대할 만큼 높아진 것이다.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를 기점으로 한국 기업들은 여러 분야에서 점차 세계 1등 고지에 다가서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산업, 디스플레이산업, TV산업이 잇달아 ‘글로벌 NO.1’으로 등극했다. 당연히 한국 기업과 한국산 제품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한국산 제품 중 세계 시장점유율 5위권 이내 품목과 향후 5년 이내 5위권 진입이 가능한 품목을 아우르는 이른바 ‘세계일류상품’은 591개 품목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세계일류상품’ 중 바로 지금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NO.1 제품만도 모두 131개 품목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세계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자랑스런 ‘K-프로덕트(K-Products)’의 숫자가 뜻밖에도 꽤 많은 셈이다.

1. 현대중공업이 국내 최초로 건조한 LNG 운반선
2. SK하이닉스 직원들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3.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47인치 풀HD LED
4. 두산중공업이 생산한 세계 최대의 담수증발기
131개 품목이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올라
글로벌 NO.1 제품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반도체, 전자, 조선, 화학, 기계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있다. 또 생산기업의 규모로 보면 대기업이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도 의외로 적지 않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런 사실로 미뤄 한국 제조업이 여러 분야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경쟁력도 상당히 제고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글로벌 NO.1 제품이 특정 산업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반도체, 전자, 조선산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들 업종의 주요 대기업이 완제품 시장에서 세계 1등을 달리면서 관련 소재, 부품, 장비를 제조·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들이 덩달아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손기혁 한국생산성본부 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전자, 조선산업 등에서 생산되는 완제품과 부품들이 다수 세계 1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물론 특정 산업에 대한 쏠림 현상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산업에서만큼은 세계 시장을 확고하게 장악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산업에서 두루 경쟁력을 확보한 나라도 극히 드물다. 다만 제조업의 고른 발전을 바탕으로 일등 품목의 다양화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산 제품 중 가장 먼저 세계 1등에 도달한 것은 역시 메모리반도체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시장점유율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두 기업은 해외 경쟁사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메모리 시장의 패권을 거머쥐고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60%에 육박한다.
다만 반도체산업의 또 다른 축인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아직 한국산의 존재감이 미약하다. 시스템반도체는 시장 규모가 메모리반도체를 웃돌 뿐 아니라 성장성도 크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제패는 한국 반도체 장비, 부품 기업들의 동반성장과도 직결됐다. 참엔지니어링은 반도체 웨이퍼 식각(Etching : 웨이퍼의 특정 부분에서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 장비 분야에서 세계 1등에 올랐고, 심텍은 반도체 칩이 장착되는 인쇄회로기판(PCB) 분야에서 글로벌 넘버원 기업으로 컸다.
참엔지니어링과 심텍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 중에서 세계 1위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레이저마커(Laser Marker) 장비를 생산하는 이오테크닉스가 그런 사례다. 레이저마커는 레이저로 글자나 도형 등을 새기는 장비다. 다른 산업에서도 두루 쓰이지만 반도체산업의 수요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오테크닉스의 레이저마커는 반도체 제품에 제조원(가령 삼성이나 SK하이닉스의 회사 로고)을 새기는 용도로 사용된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50%를 웃돈다.
이오테크닉스 관계자는 “이오테크닉스가 생산하는 레이저마커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반도체업체에 납품된다. 레이저 장비로 할 수 있는 작업이 마킹 외에 드릴링, 커팅 등 다양하기 때문에 수요처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완제품 기업 1등 되면서 협력업체 동반 1등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로 대표되는 디스플레이산업도 한국 기업들의 앞마당이다. TFT-LCD 분야에서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두 기업이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또 PDP 분야에서도 삼성SDI와 LG전자가 세계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의 도약은 반도체산업과 마찬가지로 부품, 장비 업체들의 동반성장을 이끌고 있다. LCD용 고집적 세척장비 분야에서는 디엠에스, 케이씨텍 두 중소기업이 60%에 육박하는 세계 시장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또 에스에프에이는 LCD 클린스토커(Clean Stocker : LCD 기판을 옮기는 장비)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산업에서는 그야말로 한국 기업들이 독무대를 이루고 있다. 먼저 완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선박 분야를 살펴보면 LNG 운반선, LPG 운반선, 원유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석탄·유류 운반선,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드릴쉽(해저 시추선) 등 각급 선종(船種)을 막론하고 한국 조선업체들이 1등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조선 부품 및 기자재 분야도 한국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월등하게 나타난다.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 선박용 전선, 대형 엔진용 크랭크 샤프트(Crank Shaft: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장치), 선박용 동기 발전기(Synchronous Generator : 기계동력을 전기출력으로 변환하는 교류 발전기), 선미(船尾) 주강품(대형 선박의 선미를 구성하는 구조물), 선박용 배전반 등이 세계 시장 1등을 달리고 있다. 특히 조선 분야에서 글로벌 넘버원을 기록하고 있는 제품은 완제품, 부품, 기자재를 아울러 수십 종에 이른다.
 
가전제품, IT기기, 자동차부품, 사무기기 등에 널리 쓰이는 핵심소재인 ABS수지(Acrylonitrile-Butadiene-Styrene Resin)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TV,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시장에서 한국산 완제품의 점유율이 크게 높아지면서 후방산업인 소재산업도 탄력을 받고 있는 셈이다.
투명 ABS수지 시장에서는 LG화학이 1등을 기록하고 있고, 난연(難燃) ABS수지(불에 잘 타지 않는 기능을 강화한 수지) 시장에서는 제일모직과 LG화학이 함께 활약하고 있다.
또 제일모직과 LG화학은 휴대폰 하우징(Housing)용 컴파운드(Compound) 시장에서도 강자로 꼽힌다. 하우징은 부품이나 기구를 에워싸는 상자를 말하고, 컴파운드는 그 상자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화합물이다. 쉽게 말해 휴대폰 케이스를 만드는 화합물로 보면 된다. 두 회사가 휴대폰 하우징용 컴파운드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것은 같은 계열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을 크게 펼치고 있는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세계적인 물 부족 현상 심화로 급성장하고 있는 수(水)처리 분야에서도 1등을 하는 한국 기업이 있다.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장에서 글로벌 강호로 도약한 두산중공업이 주인공이다.
두산중공업은 1980~90년대 중동 지역에서 발주된 해수담수화 플랜트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행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축구장만한 크기의 담수화 증발기를 공장에서 조립해 통째로 출하하는 특유의 ‘원모듈 공법’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2000년대 이후 중동 지역 해수담수화 플랜트 수주를 거의 독식하며 세계 시장점유율 40%를 넘어섰다.
이오테크닉스가 생산하는 레이저마커 CSM3000 제품
이제 ‘블루오션’ 찾아 ‘퍼스트 무버’가 돼야
어떤 시장에서든 선발주자가 크게 유리하다는 점은 자명하다. 처음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은 1등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 까닭에 마케팅의 구루들은 기존 시장(레드오션)에서 출혈경쟁을 하기보다 신시장(블루오션)에서 사업기회를 포착하라고 강조한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기존 시장의 강자들을 모방하고 따라갔다. 물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반도체, 전자, 철강, 조선, 자동차 등 현재 한국 주력산업 대부분이 그 전략으로 세계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접근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패스트 팔로워는 또 다른 패스트 팔로워의 추격을 허용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이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의 뒷덜미를 바짝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 단적인 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이 진정한 세계 1등이 되려면 신시장을 먼저 포착하고 창출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SNS(옛 서울통신기술)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SNS는 벌써 몇 해 전부터 이른바 ‘스마트홈(Smart Home) 시스템’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스마트홈 시스템은 하나의 IT 통합 솔루션으로 주택의 출입관리, 방범제어, 주차관제, 냉난방제어, 나아가 생활모드 제어까지 가능하게 하는 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이다. 기존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스마트 시대라는 메가트렌드에 맞춰 한 차원 진화시킨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SNS는 현재 세계 스마트홈 시스템 시장점유율 34%를 기록하며 1등에 올라 있다.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신시장에 먼저 진출한 선점효과를 상당 부분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국진 삼성SNS 기획홍보그룹 차장은 “현재 삼성SNS 스마트홈 시스템은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한국과 주거문화가 비슷한 중화권에 수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스마트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향후 스마트홈 시스템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사: 김윤현 기자 (unyon@chosun.com

[출처] 이코노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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