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하나의 세상이며 우주입니다 - 시인 유용주

종이는

 

[종이는 숲입니다]

 

이는 하나의 세상이며 우주입니다

 

- 시인 유용주

 

“인간의 진화는 이타적일 때 일어납니다.

내 욕망에 머물면 의식이 뒷걸음질 칩니다.

나무를 심고 교감하는 것은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고

자신의 의식과 존재를 넓히는 일이에요.

인간의 진보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종이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세요.

어린 시절에는 공책 가진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필기구도 변변치 않았고, 누런 비료푸대 종이를 끈으로 묶고 줄그어서 썼어요. 학교에서 가끔 글짓기 대회나 웅변대회에서 상으로 공책을 받으면 신세계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어요. 함부로 쓸 수나 있었겠어요. 조심스레 정말 아끼는 물건이었죠. 매끄러운 표면을 매만지고 냄새를 맡아보곤 했어요. 그 종이냄새를 기억해요. 아련하고 무언가 근원을 마주하는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숲의 냄새였는지도 모르죠. 종이의 텅 빈 여백은 신비로운 공간이었어요.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어요. 생각하고 상상하고 느끼며 무언가 펼쳐내는 자유로움이 그 안에 있었어요. 종이는 하나의 세상이며 우주였어요. 빨려 들어가듯 미끄러지듯이 그 속으로 들어온 거예요.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종이가 너무 흔해요. 흥청망청 포만 상태예요. 포만은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소비하잖아요. 끊임없이 종이는 생산되고 마트에 산더미로 쌓인 게 화장지고 복사지잖아요. 그러니 무엇을 느낄 여유도 없이 쓰고 버리는 거죠. 컴퓨터에서 자판 하나만 두드리면 프린터로 몇 초 되지 않아 인쇄돼 나오잖아요. 종이를 정면으로 마주할 겨를이 없고, 말 그대로 써버리는 물질에 불과한 거예요. 종이의 근원성이나 신비를 잃어버린 시대는 영혼을 잃어버린 거라고 봐요. 종이를 함부로 허투루 쓰지 않는 절제가 절실해요.

작가들도 종이를 많이 쓰는 집단이잖아요. 자기가 쓴 만큼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식을 바꾸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통계로 보면 자신이 쌓아온 관념은 3퍼센트도 안 변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인간의 진화가 일어나는 순간은 이타적일 때라고 해요. 나와 내 가족의 욕망에 머물면 의식이 뒷걸음질 쳐요. 자신을 더 확장할 수 없거든요. 나무를 심고 교감하는 것은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고, 내 의식과 존재를 넓히는 일이에요. 인간의 진보는 여기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지난해에 이곳에 120그루를 심었는데 올해는 더 많이 심을 생각입니다. 어디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궁리중입니다.

 

숲을 어떻게 만나시나요? 숲에 대한 생각이나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누구나 삶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유년의 기억이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해요. 어디에서 무엇을 보면서 자랐는지 중요한 거죠. 통째로 온통 숲이었어요. 태어나보니까 숲속이었던 거죠. 그래서 숲이 제 몸이라고 느꼈어요. 일란성 쌍둥이처럼 나무와 풀, 돌, 벌레 같은 것이 저하고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으니까요. 숲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어요. 마당에 뱀이 왔다 갔다 하고, 눈 올 땐 고라니와 토끼, 담비 같은 짐승들이 늘 가까이에 있었어요. 모든 신화를 보면 인간이 동물 사이 경계가 없었거든요. 제 어린 시절만 해도 그런 신화의 공간이 있었어요. 자연과 교감하고 숲과 소통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런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의 근원인 거죠. 하지만 문명은 미학을 파괴했어요. 자연을 닮은 구불구불한 길을 자로 잰 듯 직선으로 바꿨죠. 직선 길은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지나가는 곳일 뿐, 관계도 없고 여유도 사라졌어요.

제 글 가운데 좋은 작품 하나 선택하라 한다면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이란 글을 꼽고 싶어요. 그게 다 숲에서 쓴 거거든요.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숲을 걸어요. 숲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바다에 살면서 바다의 말을 듣고, 강가에 호숫가에 살면서 물이 전하는 말을 듣고, 사막에 가서 살면서 바람의 말을 기록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숲은 어떤 품 같아요. 편안하고 마음이 턱하니 놓여요. 마음과 생각이 맑아지고 밝아져요. 그렇게 가만있으면 숲이 말을 해주죠. 그걸 쓴 글이에요. 숲은 내가 문학하는 데 가장 근원이고 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이 들어 다시 태어난 곳으로 왔어요. 여기는 금강 발원지에요. 해발 890미터인 시무산에 있는 뜸봉샘에서 금강이 발원해서 천릿길을 가죠. 금강은 물이 북쪽으로 흐르는 유일한 강이에요. 거스르는 강이죠. 태조 이성계는 그래서 이쪽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지 말라고 했다죠. 아무튼 오랜 날들을 떠돌다 ‘시원’으로 돌아온 셈이죠.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늘 해요. ‘죽어도 좋아’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죠. 죽어서 한 줌 거름으로 나무 밑에 묻히는 것이 최고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출처]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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