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쌀을 찧는 정미소 - 유기농벼 정미소이야기

가을정미소- 

 

 

[특집- 가을 정미소] 

 

얼굴 있는 쌀을 찧는 정미소

 

- 원주 광격마을 친환경벼 도정공장 이야기

 

가을 들녘을 ‘황금’에 견주었던 건 땀에 대한 경외이자 찬미이다. 가을걷이 때다. 볏짚이 한쪽으로 가지런히 눕고 자루에는 알곡이 차오른다. 농부는 낱알 한줌 손바닥에 헤쳐 보며 햇살 들어찬 시간의 기록을 읽어 낸다. 비바람 태풍에 잘도 견딘 대견함에 ‘이만하면 됐다’ 하는 마음.

 

마을에 유기농 정미소를 짓다

원주 호저면 광격리는 원주생협이 태동한 곳이다. ‘순환실현마을’에 대한 가치를 품고 마을을 다시 일군 지 20여 년이 흘렀다. 1989년 호저소비자협동조합으로 시작해서 호저생협을 거쳐, 2000년 지역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함께 ‘원주생협’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생산자 중심으로 친환경 농산물과 쌀을 생산하는 ‘원주생명농업’을 주식회사로 운영하고, 원주생협은 소비자 조합원 중심으로 원주생명농업과 함께 농산물과 생활재를 공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친환경 유기농 쌀은 생협운동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이다. 쌀 생산이 바탕이 되어 생협운동을 이어왔고 든든하게 자리를 잡은 탓에 다른 활동으로 넓혀갈 수 있었다. 2009년 가을, 호저면 광격마을에 ‘친환경벼 정미소’를 세운 것은 이러한 20년 운동을 가름하는 하나의 역사였다. 생산자들이 2008년을 즈음 ‘유기농정미소를 우리가 짓자’는 생각에 마음을 모았다. 농사를 짓고 벼를 거둔 뒤 정미를 하는 단계는 어찌 보면 농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하고 책임 있는 정미를 하는 것이 절실했다. 원주생명농업 노윤배(47세) 사무국장은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정미를 하고 나누는 마을정미소’는 엄청난 활력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농업에서 쌀이 버텨야 다른 농업이 살거든요. 그래야 채소나 축산이든 다른 농사도 의미를 갖고 연계를 할 수 있는 거죠. 도정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힘이에요. 쌀을 우리가 쥐고 있는 거니까요. 이렇게 정미소가 없으면 벼는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쌀이 얼굴을 잃어 버려요. 누가 생산했는지 사람들은 알 길이 없는 거죠. ‘국산’이란 이름표만 달고 진열된 물건이 되고 말아요.”

처음에는 친환경 벼가 300톤을 넘지 않아 인근 지역 정미소에서 도정을 했다. 하지만 시설이 낡아 돌을 잘 골라내지 못하거나, 현미나 5분도미를 고르게 잘 뽑아내지 못해 안타까웠다. 친환경 농지가 늘어나고 300톤을 넘자 조금 규모 있는 도정공장에 맡겼다. 도정 품질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농약을 쓰는 일반 쌀과 섞이는 문제가 계속 일어났다. 특히 도정 부산물인 왕겨, 등겨는 도정공장 소유인 탓에 사용하지 못하고, 쓰더라도 일반 벼와 섞여 있어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마을 생산자들이 스스로 도정공장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어느 정도 재원이 필요한지 머리를 맞댄 지 1년 만에 ‘친환경벼 도정공장’을 마을에 세웠다. 생산자들 130여 명이 출자하고 일부 대출을 받고 생협 순환자금을 포함해서 5억을 들여 공장을 세웠다. 첫 정미를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시험 가동을 하고 쌀을 쏟아내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땀으로 일군 유기농 쌀을 우리 손으로 우리 정미소에서 찧는구나 생각하니 가슴 벅찼어요.”  (중략)

 

글 사진 김기돈

 

[출처]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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