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사람의 길 -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사람의 길에서 다섯 번째 만난 사람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모든 인류가 갈망하던 장수의 꿈은 실현되고 있으나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장수를 복으로 누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선진국보다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적절한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고, 질병과 빈곤, 실업 문제 등 현실이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 앞에 놓인 생과 죽음을 원망 없이 존중하고 뜨겁게 끌어안고 싶습니다. 저마다의 길이 있지만, 다른 누군가를 통해 경험을 확장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여러 분야의 인물을 만나 ‘사람의 길, 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탕자도 돌아갈

아버지 품이 있었다

“그 아이를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괴롭힐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어른들 문화가 아이들 학교 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열, 세력, 권력!” 이는 2013년 SBS시사다큐멘터리 3부작「학교의 눈물」을 통해 공개된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내용 일부다. 그는 법정에서도 사건의 핵심과 심각성을 모르는 비행소년과 그의 부모, 교사를 향해 정신이 번쩍 나도록 호되게 쓴소리를 했다. 그 장면을 인상 깊게 지켜본 시청자들은 아이들이 어쩌다 저런 지경까지 갔을까 안타까워하며 학교폭력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데 공감했다.

천종호 판사는 1994년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1997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관되었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지방법원을 거쳐 현재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다. 2010년 10월 우리나라 최초로 시행한 ‘사법형그룹홈(대안가정)’ 설립을 주도하였고, 이를 통해 소년범 재비행률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3년에 소년재판 이야기를 다룬『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와 올해 초『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를 발간하여 인세 전액을 사법형그룹홈에 기부하고 있다.

‘만사소년萬事少年’ 자나 깨나 ‘소년’ 생각뿐이라는 그는 ‘비행소년의 앞날을 위해서만 아니라 나의 자녀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사회 전체가 청소년 문제를 제대로 각성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가정의 존립이 아버지에 의해 좌우되듯이 사회의 존립도 ‘사회적 아버지’에 의해 결정된다며, ‘소년범의 아버지’로 살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판사실에 와서 곯아떨어진 아이

상습적으로 가출하고 원조교제로 생활하던 소녀가 있었다. 가족에게 돌려보낼 수 없는 환경이라서 2년간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이레센터에 보호처분을 내린 아이였다. 센터에서 나름 성실하게 지냈는데 보호관찰 중에 다른 소녀들과 휩쓸려 무단이탈을 하고 말았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아이에게 ‘돌아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호통을 쳐주고 싶었지만, ‘이제라도 연락을 줬으니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에 꿀꺽 삼켰다. 우선 아이에 대한 구인장拘引狀이 발부됐는지 보호관찰소에 확인하니 아직 안 되었다기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발부 신청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아이와 통화를 했다. “지금 당장 판사실로 오면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으니 빨리 오너라.” 했더니 “저… 판사님, 차비가 없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차비는 걱정 말고 택시 타고 법원까지 오라.’고 단단히 이르자 아이는 덤덤하게 ‘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이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밀려오는 졸음을 어쩔 줄 몰라 해서 잠시 눈 좀 붙이라고 했다. 아이는 “여기서 자도 돼요?”라면서 이내 쌕쌕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이제 밤거리를 그만 떠돌고 마음의 안식처를 빨리 찾아 상처도 치유하고 새 출발하기를 바랐다.

꿈을 잃고 부유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방황을 끝내도 돌아갈 집이 없어 어두운 세상을 떠도는 아이들은 부지기수다. 아버지 유산을 몽땅 챙겨 방탕하게 살던 탕자도 결국 돌아갈 아버지 집이 있었다. 그에게 다시 시작할 출발점으로서 아버지 품은 넉넉했다. 우리 사회 가 아이들에게 이런 품이 되어야할 텐데 비행소년을 위한 환경은 인색하고 열악하기만 하다.

지난 5년 동안 9,000여 명의 소년범을 만났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훨씬 많은데,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나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처럼 소년비행 수준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잔인해지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조차 모르거나 반성하지 않는 소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러니 비행소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자는 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소년법은 “용서와 관용을 전제로 하며 소년보호처분의 근거가 되는 소년법의 주된 목적은 비행소년을 ‘처벌’하는 데 있지 않고, ‘환경조정과 품행교정’을 통하여 건전하게 육성시키는데” 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