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매 순간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란 본능적 선택에 의존하여 생존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매 순간 특별한 의미를 좇아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과도하게는 죽음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한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지상의 존재 중 소위 ‘실존’의 의식을 갖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기에 그 삶은 ‘먹고사니즘’을 넘어 자아실현의 과정이 되었고, 그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닌 종교와 영원에 대한 희구로 대체되었다. 종으로서의 인류는 항상 새로운 ‘의미’와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인간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거 못 먹고 못 입던 시대에는 ‘살아남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절박함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의미를 압도했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생존’보다 의미를 중시하게 된 것은 물질적인 풍요와 의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었다. 한 끼 안 먹는 것은 안 된 일이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환갑을 넘겼노라 잔치를 벌이는 일은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습이 되었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를 획득하고 의학기술을 발달시키는 노력을 통해 유한한 존재의 생득적인 ‘공포’를 최후의 순간까지 유보시키는 일에 성공했다.
그러므로 근래에 들어 생겨난 웰빙의 풍조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에 맞서 투쟁해온 인간 역사의 산물이다. 영원한 존재는 스스로 그 존엄을 입증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과 같이 유한한 존재들은 스스로의 존엄에 대한 확신을 잃는 순간 숙명적인 공포의 노예로 돌아가 버린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가꾸고 단련하며 아름다운 옷과 미식과 여행을 즐기는 개인적 행복의 추구나 이타적인 헌신과 희생으로 사회에 공헌하고자 애쓰는 모든 종류의 숭고한 인간 행위는 사실은 다 자신의 존엄을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이라는 본질적 공포에 맞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존재가 죽음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남은 최후의 순간에 죽음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존엄을 입증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죽음의 새로운 의미를 만나야 한다. 웰빙의 삶을 웰다잉의 죽음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자기 결정권의 행사가 그 해답이다.
일본의 건설기계 분야 대기업인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 전 사장은 지난 연말 ‘감사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생전 장례식’을 가졌다. 암으로 회생이 불가능해진 그는 과감하게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의식이 있는 동안에 생전의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은 의미 있고 즐거웠다. 그의 이런 결정에 대해 일본사회의 반향은 컸다. 인생의 (허무한)끝이 아니라 ‘능동적인 마침표’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안자키 사장의 이와 같은 행위를 ‘슈카쓰’라고 한다.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말로 그 내용 중에는 연명치료의 여부, 장례 절차, 지인에게 전할 편지 등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포함된다.
나는 5선의 중진 국회의원으로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고령화 사회의 대책에 대해 고민해 왔다. 국회 내에서는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이끌면서 여러 전문가, 관련단체와 힘을 합쳐 소위 ‘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법률적 근거를 가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과 시행이 제도화 되었다.
우리가 이 일을 중요한 성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거부’야말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취지에 공감하여 자발적 동참을 이어가고 있다. 바라건대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일에 동참함으로써 죽음의 새로운 의미를 만나게 됐으면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존엄한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1951년 부천 출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풀무원 창업, 민선 2·3대 부천시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초대 당대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웰다잉 문화조성 국회의원 모임 대표, 現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5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