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

최순임, 도예가

나는 ‘여기’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지금’에 가깝다. 나는 나와 가까운 것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는다. 거대 담론으로 가득한 무거운 세상을 돌파하는 법은 지극히 사사로운 일상 속 감수성으로 생활의 감각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존중받아야 마땅할 개인의 영혼이 멸시당하지 않도록 빛을 비추고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 옆을 담아내고 나에게 친숙한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품는다. 가까운 것에 볼을 맞대고 한량없이 가까워진다. 살아오면서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창조의 열정이 솟구치는 것은 예술가로서 축복이다. 그럴 때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믿고 따르면 된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업을 시작하면 차츰 자연스럽게 삶을 관통하는 느슨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품이 되어간다. 나에게 있어서 예술은 나 자신을 믿고 걷는 그 길 위에서 태어난다.

끝없는 갈망으로 인해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들을 다시금 내 안으로 환원시킨다. 고단한 일상의 삶 속에서도 영혼의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해 쉼 없이 돌보고 가꿔온 내 자신의 깊은 그곳에 ‘또 하나의 정원’이 있다. 내면 창작의 샘이자 정서와 감성을 이루는 모든 것을 그 정원에서 발견한다.

오늘도 나는 정원에 앉아 있다. 오늘 만난 풀벌레 한 마리, 꽃 한 송이, 저녁노을…. 사소한 기쁨과 감동이 우리를 정화한다. 오늘처럼 종일 비가 내리다가 잠깐 멈춰 햇살이 쨍하면 코끝부터 설레어 두근거린다. 당장이라도 숲으로 달려가 빗물 흠뻑 머금은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만나고 싶다.

작은 것이 주는 웅장함, 모든 식물에는 특별한 웅장함이 있다. 마치 시처럼. 달리아와 백합, 수선화 같은 구근식물의 씨앗을 정원에 심어두면, 깊은 향기를 머금은 꽃을 피울 때까지 땅속에서는 우주에 닿을 에너지로 온 힘을 다해 꽃대를 밀어 올린다. 나를 둘러싼 우주 안에서 나는 하나의 씨알이 된다. 피어나려는 힘, 피워내려는 힘으로 가득한 것이다.

‘Garden’의 어원은 ‘GARD’(울타리)+‘EDEN’(낙원)이다. 인위의 울타리 속 자연의 유토피아는 행복감을 얻는 돌봄과 보살핌의 기술을 통해 정원으로 구현된다. 공격적이거나 비우호적인, 그리고 척박한 외부와 차단된 고요와 안식의 장소에서 감성의 본질을 성찰할 수 있다. 자신만의 미감(美感)으로 정신적 가치와 멋을 향유하며 비로소 조용한 기쁨과 평온이 정원에 완성된다.

정원은 기쁨에 가득 찬 노동으로 지상 낙원을 꿈꾸는 자들의 무대이다. 그리고 나무의 영혼, 꽃의 향기, 바람의 목소리로 쉼 없이 창조하고 변화하는 자연의 격렬한 역사는 여전히 허기지고 갈급한 내 삶의 욕구를 채워주는 거대한 놀이터가 된다. 가두어진 정원이 아닌 숲으로 연결된 정원, 나아가 우주로 연결된 정원은 순환적 생명관을 품고 치유와 위로, 온전한 사색 공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비로소 이 심연의 정원 ‘LE JARDIN’의 공간 개념과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삶에서 가꿔온 인간관, 자연관, 우주관이 담긴 웅장하면서도 작고 고요한 공간이다. 분수 위에서 작고 부드러운 물줄기가 쉼 없이 솟아 흐르고, 무수히 많은 반딧불이가 모여 우주까지 닿을 빛을 품어 안고, 땅속 씨알에서는 온 힘으로 꽃을 피워 내는 건강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여기서 영롱하게 빛나는 정원은 언뜻 아름답기만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불안과 상처, 고통 등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이 상처를 통해 더욱 빛나듯, 모든 상반된 가치와 속성은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주의 비밀과 경이, 기쁨과 환희를 심연의 정원 ‘LE JARDIN’에서 길어 올려 흙 위에, 종이 위에, 허공에 매만지고 춤추고 뿌려낸 모두는 삶의 드로잉이 된다. 정원을 통해 내면과 마주하면서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인식이 명징해진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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