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지나간 시절을 되돌리는 건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건 영화와 같은 예술 매체의 특권이다. <로봇 드림>은 1980년대 미국의 뉴욕을 배경으로 당시를 향수하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무성영화처럼 대사 없이 극 중 캐릭터의 행위와 표정, 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음악으로 구성된 <로봇 드림>의 주인공은 ‘도그’다. 도그는 강아지를 사람처럼 의인화한 존재다. 함께하는 사람 집사(?)가 없어서일까, 집에서 외로이 음악 방송 MTV와 같은 TV 채널을 마구잡이로 돌려가며 시간을 보낸다. 

목적 없는 생활 습관과 같아 지루함으로 가득한 도그의 눈에 반려 로봇 광고가 들어온다. ‘로봇’이 옆에 있다면 무얼 하든 즐겁게 지낼 것 같았던 도그는 그 즉시 주문하고 둘은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다. 함께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고 집안에서 무료할 틈이 없던 둘은 이번에는 코니아일랜드의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로봇이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끔 도그가 바깥세상으로 이끈 것인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놀이공원의 들뜬 기운에 취한 것인지 로봇은 해변의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그만 변을 당한다. 몸속에 물이 스며들어 부품에 문제가 생긴 것. 도그는 기능을 멈춘 로봇을 부축해 집으로 이끌고 싶지만, 혼자서는 힘에 부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친구가 없는 도그는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잠시간 방치한 사이 누군가 로봇을 가져가면서 생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가족 같았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도그와 로봇의 관계는 이제는 더는 누릴 수 없는 1980년대 뉴욕을 향한 <로봇 드림>의 창작자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바론이 2007년에 출간한 그래픽 노블을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로봇 드림>에는 1980년대를 통과한 이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디테일들이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스크린 여기저기에 감동의 눈물로 흘러내린다.

덕후(?) 기질이 다분한 도그의 침실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C3PO와 R2D2, 그리고 마징가Z 피규어가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 국내에 소개된 다큐멘터리이기도 한데, 도그는 로봇과 함께 1980년대 당시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자리 잡은 영화광들의 성지, 재미 한국인 김용만 씨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에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를 틀어 함께 관람하기도 한다.

사실 이들 요소는 문화에 한정되어 있어 모든 사람이 향수하기에는 제한적이다. 많은 이가 공유하는 추억이라고 하면 좀 더 폭넓은 의미를 지닌 대상이어야 할 텐데, 그런 상징처럼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이다. 한때 뉴욕 마천루의 대표 격이면서 9.11 테러의 아픔과 비극을 간직한 장소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불러일으키는 향수의 정체는 상실감, 이를 극복하는 일상의 회복력이다.

극 중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첫 등장은 도그와 로봇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 어깨동무 자세로 등을 보이며 뉴욕 시내를 바라볼 때다. 한때 좋았던 시절의 이미지이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마음속 텅 빈 굴로 남은 감정은 영화의 말미 도그와 로봇이 적색 신호등 불이 들어온 거리의 횡단보도 앞에서 재회할 때 재현된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남아 있으면서 둘 다 새로운 반려인을 맞이했기에 예전의 감정으로 다시 만난 기쁨을 공유하기에는 망설여진다.

로봇을 바라보는 도그의 눈빛에는, 그대로 멈춰 선 도그와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로봇의 마음에는, 이제 서로를 기억에만 묻어둘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다. 그때 횡단보도를 건너라며 켜지는 초록 불의 의미는 남다르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무수한 실패와 좌절과 비극 가운데서도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고로 우리 삶 또한 과거에 머무른 대신 현재를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간다.

<로봇 드림> 또한, 도그와 로봇의 이별로 마무리하지 않고 새로 만난 반려인들과 또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결말로 끝을 본다. 거기에는 추억과 향수로 힘든 현실을 버티고 회복하여 새로 올 미래를 마주하겠다는 삶의 당연한 해결책이 담겨 있다. 사람이든, 도그이든, 로봇이든, 일상은 지속하는 법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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