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드로잉은 ‘작아’의 옛 이웃입니다. 2007년 동네 하나뿐인 카페이자 미술관으로 문 연 뒤 동네주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몇 해 뒤 성북동이 달라지기 시작할 무렵 문을 닫았습니다. 한남동 이사 소식은 늦게 전해들었습니다. 지난 봄, ‘테이크아웃드로잉과 가수 싸이’, ‘강제집행’이란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11월 늦가을에서야 불 밝히고 있는 그곳을 찾았습니다. 2015년을 보내며 ‘젠트리피케이션’ 한가운데서 우리 사회와 삶을 향해 전하는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우리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재난을 직면한 한 해였어요. 그 중심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있었고, ‘한남포럼’ 활동이 이 사태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3월 한남동 사태를 겪으면서 대책위 꾸리고 어떻게 돌파해나갈지 응급수술하다시피 방법을 논의했어요. 이 사태가 무엇에 관한 문제인지 알고 싶었어요. ‘가게들의 문제’, ‘민주주의 문제’라고도 하신 분도 있어요. ‘한남포럼’이란 이름으로 깊은 논의를 시작하게 된 거죠.
5월 첫 한남포럼은 뜨거웠어요. 사태 현장에서 포럼을 열었고, 불안하고 두려운 재난 한가운데서 함께해주셨죠. 주제는 ‘환대의 공간, 그리고 여정’이었어요. 우리는 잠시 이 공간을 빌려 쓴다는 생각으로 동네에 들어와 지속가능한 연구와 함께 예술가를 초대해 발표의 장을 만들어왔어요. ‘환대의 공간’이란 그런 뜻이에요. 재난을 맞았지만 재난조차 나누고 있잖아요. 특히 신제현 작가는 강제집행 전부터 레지던시로 체류하면서 폭력을 몸으로 경험했던 분인데, 강제집행을 조금 지연시키려고 공간의 모든 가구들에 물고기들 눈에는 안 보인다는 빨간색 낚시줄로 천장과 연결하는 설치물을 만들었어요. 주변에 버려진 가구나 도구로 악기를 만들어 퍼포먼스도 했어요. 전시회 이름이 ‘한남스타일’이었죠.

 

△ 테이크아웃드로잉은 2010년 장기 임대계약을 하고 들어왔다. 6개월 뒤부터 건물주가 바뀌다 2012년 가수 싸이가 건물을 매입했다. 싸이 측은 몇 차례 강제집행과 명도소송을 내며 이 공간을 씨제이 체인카페에게 임대하겠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3월 13일 건물주가 카페를 둘러싸고 세운 펜스 모습.

 

그 사이도 여러 힘든 일을 겪으셨지요. ‘재난의 공공성’ 3회 포럼 주제가 공감이 많이 갔어요.
7월과 10월 사이 제 심리상태가 많이 변했어요. 그 전까지는 어쨌든 버텨보려 했어요. 그 뒤 건물주의 많은 소송과 여론전으로 ‘넉 다운’되었죠. 재난 상황임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여기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시라는 거죠. 우리가 먼저 겪었을 뿐, 당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12월 포럼주제는 ‘망명지는 어디인가?’예요. 주제에도 절박한 언어를 담게 되요. “내쫒기면 어디로 가야 하지?”많은 분들이 오히려 이곳을 망명지로 택했어요. 인디뮤직팀 70팀이 공연하겠다고 해요. 그분들은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이 우리 망명지다, 여기가 방주야’라고 선언하는 거죠. 제 연구 주제로 ‘난민’분들과 인터뷰하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몰린다’는 것은 완전히 뿌리 뽑혀 두들겨 맞고 내동댕이쳐진 삶인 거잖아요.
많은 분들이 질문해요. ‘네 차례나 강제집행 당했는데 막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막을 수 없겠죠. 그렇지만 버텨야 하고, 지켜내야 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이란 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있는 거예요. 엄마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거죠. 이런 상황에서 포럼을 연다? 의문을 가지시겠지만, 머리로 납득이 안 되는데, 몸이 나갈 수가 없어요. 같은 박자여야 하는 거죠.

 

이런 사태를 겪는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돼요.
계획된 인재예요.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기획부동산, 기획변호사들이 있어요. 수많은 가게들이 내몰렸지만 연대하지 못했고 비애를 나눈 적이 없던 거예요. 제도권 안에 살면서, 법 테두리 넘는 일을 할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법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법은 삶을 보조해주는 수단일 뿐이지만 법을 기준으로 선을 넘으면 ‘불온하다’고 하는 거죠.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비겁의 비겁의 비겁의 역사’인 거죠.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예술가 삶을 선택했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아이를 하나 낳았어요. 낳자마자 내몰림을 당하는 거죠. 우리 사회, 우리 도시와 마을, 우리 이웃들은 아직 이 문제를 인식 못 해요. 싸움이 우리를 고립시켜도 저항하는 것이 맞는 거죠. 이것은 사회적 배제이고, 사회적 난민 상태에요. 고립감을 많이 느껴요. 하지만 재난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적어도 비겁하지 말자, 날마다 작지만 위대한 일을 하나 하자 생각해요. 그건 쌓인 일들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꾸는 거예요. 내가 선 자리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는 걸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요.
여기서 내몰리더라도, 우리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모든 거리의 현장이 우리 현장이 되겠구나, 직감해요. 타인의 고통을 아는 거죠. 이 재난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세포 하나가 막 활성화되는 느낌이에요.

 

△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동네와 미술관, 카페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예술공간이다. 9년 동안 지역을 연구하며 수십 회에 이르는 전시회를 열었다.

 

‘사회적재난’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용감하게 맞서는 모습에 놀랐어요.
재난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크기예요. 머리로 돌파할 수가 없는 거죠. 건물주 폭력에 대응할 방법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이미 진화해 완전 괴물이 돼 있어요. 운 나쁘게 이 건물주를 만난 것이 아니라 그 괴물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봤어요. 우리의 선택이 괴물을 자꾸 만든거죠. 인디언 책에서 읽었어요. ‘마음 안엔 두 마리 늑대가 산다. 누구한테 밥을 줄 거냐?’ 작고 선한 늑대는 외면하고 힘 센 늑대에게만 밥을 준 거죠. 이 재난은 내가 밥 준 늑대가 괴물이 되어 나를 문 거예요.
괴물의 폭력을 목격하면서 여기가 또 다른 ‘용산참사’ 현장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죽는다고 사람들이 어떤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까? 그게 더 두려운 거예요. 세월호 문제도 해결 안 하고, 진상규명도 안 되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버티면서 재난의 공공성을 통해 우리 한계를 알고 싶어요. 포럼에서 들은 ‘인간이 재난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 인간을 극복한다’.는 문장 때문에 궁금함이 많이 생겼어요. 새로운 잃어버린 언어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으로 찾고 싶어요. 인간을 초월한 인간상, 초월적인 어떤 예술이 나오지 않을까?
이미 많은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어요. 유태인 학살처럼 그 시절 우리 안에 있는 잔인함이 세대를 거쳐 오면서 다시 반성의 언어로 회복되었잖아요. 괴물을 만드는 것도 인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반성할 수 있다면, 미래 어느 순간 우리가 재난을 극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저항을 최대한 해야 하는 거죠.

 

△ 이진경 작가가 쓴 ‹스탑 싸이, 같이 사는 사이› 손피켓을 들고 저항하는 예술가들. 테이크아웃드로잉과 대책위, 문화계 사람들이 ‘한남포럼’을 구성해 이번 사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작고 오래된 단골집을 가질 권리’라고 이진경 작가가 쓴 손 피켓을 봤어요. 가게가 없어지면 동네도 바뀌는데,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작고 오래된 단골집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시민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도시가 원래 그래!’라고 말하며 돌아서면 답이 없죠.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현상이기 때문에 답이 나와 있어요. 동네에서 작은 가게는 다 사라질 것이고, 큰 상가가 될 것이고, 그런 건물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밖에 없어요. 대기업이 만든 골목풍경은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잖아요. 결국 ‘문화백화현상’이라는 후유증이 남아요. 독특한 동네 문화가 없어지는 거예요.
핵심은 균형감이에요. 동네 작은 카페도 가고 프랜차이즈 카페도 가고, 동네에서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작은 가게에도 관심을 갖자는 거예요. 그 균형감을 잃을 때 한쪽으로 쏠리고, 도시가 괴물이 돼버리는 거예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세계, 다양한 문화가 마을 속에 섞여 있게 하는 것은 시민 한 사람이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