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세계여행을 다녀오자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아?”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푹신한 침대에 남편만 있으면 어디든 좋아.”
2013년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척추에 암이 생겼다. 수술을 하고 뼈에 종양 하나를 남겨놓은 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세상은 아픈 나를 보듬어주고만 있기엔 바쁜 일들로 넘쳐났다. 몸이 아파 힘든 것보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무기력한 나날이 이어졌다. “괜찮아, 다 나을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이 나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다.
나의 우울함은 집안 분위기를 더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던가. 그러나 남편은 내 몸과 마음부터 염려했다. 바쁘게 일하고 돌아와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을 쉬지도 못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우울해하는 나를 달래는 일이었다. 나는 남편의 어깨에 기대 엉엉 울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쯤 되면 답답함에 성이 날만도 한데 남편은 인내심 있게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어느 날 뜻밖의 말을 건넸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우리 평생소원이었던 세계여행 가 볼까?” 작은 소일거리 하나 하지 못할 거라고 울부짖던 내게 상상치도 못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아픈 내가 어떻게 여행을 가….” “아프니까 못 갈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견이지. 편견을 깨보자. 우리가, 아니 네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보여주자.”
든든했다. 이 사람만 있다면 세상 끝에서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남들이 미쳤다고 하든 말든 우리는 배낭을 쌌다. 수술 6개월 후인 2014년 2월, 암환자인 나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세계여행의 꿈을 마침내 이루었다. 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믿을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곳을 향해 마침내 날아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푸른 파도 소리와 선선한 바람이 따스한 햇살과 함께 잠을 깨우는 곳일 거라고 상상하며 떠났지만, 현실은 튀어나온 침대 스프링에 허리를 다쳐 밤잠을 설쳐야만 하는 곳이었다. 막상 다다른 여행길은 험난한 인생길과 똑같았다. 내 어깨에 짊어진 배낭은 고작 10kg이었지만 큰 산을 업은 듯 무거웠고,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엉망인 지도를 따라 같은 길을 수없이 헤매야 했다. 자신 있다고, 편견을 깨보겠다며 으스대던 용기가 점점 사라졌다.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한복판에서 나는 더 이상 못 걷겠다며 주저앉아 울었다. 어느 곳으로 가야 숙소가 나올지 감도 잡을 수 없고, 용기 내어 길 가는 이를 붙잡아 물어봤자 질문을 알아듣지도 못했으며, 나를 길에 두고 숙소를 잡아 돌아오기엔 너무 막막한 상황이었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결국 25kg나 되는 자기 배낭을 뒤에 메고 내 배낭마저 앞에 멨다. 손에 든 가방까지 총 4개의 가방을 짊어지고선 앞장서서 걸었다. 그 길로 가야 한다는 확신도 없었겠지만, 자기가 두려워하면 아내인 나도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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